어제는 회사의 승진인사가 있던 날이다.
우리 회사는 기수 문화가 존재한다.
새로운 인사이동을 해도
"몇 기냐, 누구와 동기냐"와 같은 질문을 듣게 된다.
나는 그런 문화가 옳다. 그르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승진인사가 발표되고
전체적으로 기수 위주의 승진이었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드러났다.
1. 해병대도 아니고 기수위주가 뭐냐
2. 고참들을 인정해 주는 따뜻한 인사였다.
나는 두 입장 다 이해가 된다.
그리고 어떤 방식의 인사였더라도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승진을 희망하는 수와 해줄 수 있는 수의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연공서열로만 공로를 치하하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하나 대충 하나
결과는 동일하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도 이야기할 것이다.
또 다른 의견은 오랜 시간 조직을 위해 일을 한
공로를 알아주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도 연공서열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부분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연차와 서열로만 인사를 한다는 것은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럼 딜레마가 발생한다.
"회사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자"는
열정적인 자인가 호구인가?
성취욕과 안정감으로 대변되는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다.
틀리지 않았다.
위 사례와 마찬가지로
최근 "워라밸", "MZ", "꼰대"와 같은 단어들이
유행하면서 세대갈등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왜 항상 우리는 갈등을 할까?
그는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고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론과 투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정당한 비판이 아닌 비난이 난무하는 현장도
사회 여기저기서 보인다.
비난과 비판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차이는
"대안제시"와 "상호에 대한 공감"이다.
내가 살아온 시대, 환경이 다른데
자기의 시선과 관점으로 서로를 보기 때문에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세대 갈등을 예로 들면,
어른들은 본인들이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부족하기에 때론 무모하고
때로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본인과 의견이 다르다면
대안을 제시하고
나와 다른 환경 나와 다른 세상에서
성장하였음을 공감하자
"왜 나만 또는 왜 쟤는"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모두가 본인이 유리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상황을
진심을 다해 이해할 수 없다.
분노하지 말자
분노에 가득 찬 의견은 남에게 감정만 전달될 뿐
의견은 전달되지 않는다.
소음과 같다.
결국 나에게 남는 건 없다.
위 모든 이야기는
나에게 하는 이야기다
모순적이고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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